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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 헐버트
Property, Value
Property (26) Value (38)
hlod:aliasName
  • 할보(轄甫),흘법(訖法)
hlod:birthDate
  • 1863년 1월 26일
hlod:birthPlace
  • 버몬트주(Vermont) 뉴헤이번(New Haven)_미국
hlod:deathDate
  • 1949년 8월 5일
hlod:detailExplanation
  • 버몬트주(州) 뉴헤이번 출생. 1884년 다트먼트대학을 졸업, 그 해 유니언신학교에 들어갔다가 1886년(조선 고종 23) 소학교 교사로 초청을 받고 D.A.벙커 등과 함께 내한(來韓),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외국어를 가르쳤다. 1905년 을사조약 후 한국의 자주독립을 주장하여,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에 돌아가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1906년 다시 내한, 《한국평론 The Korea Review》을 통해 일본의 야심과 야만적 탄압행위를 폭로하는 한편, 이듬해 고종에게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내도록 건의하였다. 그는 한국 대표보다 먼저 헤이그에 도착, 《회의시보 Courier de la Conferénce》에 한국 대표단의 호소문을 싣게 하는 등 한국의 국권 회복운동에 적극 협력하였다. 1908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 정착하면서 한국에 관한 글을 썼고, 19년 3 ·1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서재필(徐載弼)이 주관하는 잡지에 발표하였다. 대한민국 수립 후 1949년 국빈으로 초대를 받고 내한하였으나, 병사하여 양화진(楊花津)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저서에 《한국사 The History of Korea》(2권) 《대동기년(大東紀年)》(5권) 《대한제국 멸망사 The Passing of Korea》 등이 있다.
hlod:explanation
  • 1886년 내한하여 육영공원에서 외국어를 가르쳤다. 을사조약 후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에 돌아가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한국평론》을 통해 일본을 규탄하고, 고종에게 헤이그 밀사 파견을 건의하는 등 한국의 국권 회복 운동에 적극 협력하였다.
foaf:gender
hlod:hasArtworkInfo
hlod:hasBadgeInfo
hlod:hasEducationInfo
hlod:hasFather
  • 칼빈_헐버트
hlod:hasMaternalGrandFather
  • 엘리어자_휠록
hlod:hasMother
  • 메리_엘리자베스_우드워드_헐버트
hlod:hasRelatedEventInfo
hlod:hasRelatedOrganizationInfo
hlod:hasSourceInfo
hlod:nationalPlace
  • 미국
hlod:occurAge
  •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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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무,융희
hlod:personType
  • 정치/행정가,교육/언론인
hlod:realName
  •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hlod:realNameChi
  • Homer Bezaleel Hulbert
hlod:reignStartDate
  • 미상
hlod:titleKor
  • 헐버트
hlod:tombPlace
  • 양화진외국인묘지(楊花津外國人墓地)
RDF:ty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