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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 이하영
Property, Value
Property (20) Value (58)
hlod:birthDate
  • 1858년 8월 15일
hlod:deathDate
  • 1929년 2월 27일
hlod:detailExplanation
  • 1886년(고종 23) 외아문주사(外衙門主事), 이듬해 사헌부감찰·전환국위원(典圜局委員)이 되었다. 이 해 9월 박정양(朴定陽)공사의 일행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겸임주차미국공사관 서기관이 되고, 다시 주차미국서리전권대신으로 미국에 주재하였다. 1889년 귀국할 때는 우리나라 철도건설에 관심을 보인 미국정부로부터 철도의 모형을 얻어오기도 하였다. 이어 기기국사사(機器局司事), 웅천·흥덕의 현감, 외아문참의 등을 거쳐 1895년 궁내부회계원장(宮內府會計院長)이 되었다. 이듬해 한성부관찰사가 되었다가 주차일본국특명전권공사, 1897년 주차일본국특명전권대사로 일본에 주재중 일본정부로부터 훈1등욱일대수장(勳一等旭日大綬章)을 받았다. 그 뒤 중추원부의장·귀족원경(貴族院卿)·중추원의장 등을 역임하고, 1899년에는 의정부찬정·주차일본국특명전권공사 겸 의정부찬정이 되었다. 이듬해 훈2등태극장(勳二等太極章)을 받았다. 1904년에 외부대신이 되었는데, 재임기간 동안 일본에 충청도·황해도·평안도의 어로권 부여, 일본의 황무지개척권요구, 제1차한일협약, 메가다(目賀田種太郎)의 재정고문 취임, 일본헌병대의 경성치안권 장악, 마루야마(丸山重俊)의 경무고문 취임, 일본에 통신원 이양, 연해하천의 항해무역권 부여 등의 큰 사건들이 벌어졌고, 그때마다 각종 이권을 일본에 넘겨주었다. 1905년에는 훈1등8괘장(勳一等八卦章)을 받고 법부대신·형법교정총재가 되어 을사조약에는 반대의사를 표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계속 친일의 입장에 섰다. 1907년 중추원고문이 되었고, 한국병합 후에는 일본정부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고문을 지냈다.
hlod:explanation
  • 1904년 외부대신으로 충청도 ·황해도·평안도의 어로권을 일본에 부여하고 제1차 한일협약 등 이권을 일본에 넘겨주었다. 국권이 피탈되자 일본으로부터 자작을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고문을 지냈다.
hlod:familyPlace
  • 경주(慶州)
foaf:g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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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od:hasCareerInfo
hlod:hasSourceInfo
hlod:jaName
  • 치행(致行)
hlod:nationalPlace
  • 조선,대한제국
hlod:nickName
  • 금산(琴山)
hlod:occurAge
  • 조선,대한제국,일제강점기
hlod:occurDynasty
  • 고종,광무,융희
hlod:personType
  • 정치/행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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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하영(李夏榮)
hlod:realNameChi
  • 李夏榮
hlod:reignStartDate
  • 미상
hlod:titleKor
  • 이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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