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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 오지영
Property, Value
Property (19) Value (20)
hlod:birthDate
  • 미상
hlod:birthPlace
  • 전라북도 익산
hlod:deathDate
  • 1950년
hlod:detailExplanation
  • 동학농민운동에 직접 참가하여 최시형(崔時亨)을 받들고 있던 북접(北接)이 종교적 성향을 고수하여 남접(南接)의 무력봉기에 가담하기를 꺼리게 되자, 과감하게 이의 조정역을 맡아 항일구국투쟁이라는 명분과 기치 아래 대동단결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1905년 손병희(孫秉熙)에 의하여 천도교로 선포된 이후에는 총부(總部)에서 최고간부의 한 사람으로 천도교선포 초기의 기틀을 닦는 데 노력하였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는 교회 일각의 타협주의 경향에 반대하여 이른바 천도교 복구파에 대한 혁신파로서 천도교의사원 의장으로 피선되었다. 혁신운동을 통하여 천도교의 진로를 모색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천도교의 민주적인 운영을 주장하여 미신적 종교의식의 타파, 계급적 조직체의 타파 등을 통하여 혁신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복구파의 반대에 부닥쳐 실패하였다. 특히, 손병희의 사망 이후에는 혁신파인 연합교회파(聯合敎會派)로 분립하여 그 지도자가 되었으나 천도교의 주류에서는 밀려나고 말았다. 그의 저서 『동학사(東學史)』는 자신의 생생한 체험과 견문을 중심으로 저술한 동학·천도교운동사로서 그의 만년에 간행된 것이다.
hlod:explanation
  • ?∼1950. 조선 말기의 종교인. 전라북도 익산 출신. 동학농민운동과 1920년 이후 천도교 혁신운동의 지도자이다. 양반집안에서 태어나 한문의 소양을 닦고 일찍부터 동학에 입교하여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 당시에는 동학의 지도자가 되어 양호도찰(兩湖都察)이라는 중책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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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주(海州)
foaf:g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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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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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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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지영(吳知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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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吳知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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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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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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