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ked Data Resources View

  • Linked Data Text Browser
  • Datasets
  • Resources
검색
view MetaData view Dataset Statistics [This page as RDF]
인명 : 서장옥
Property, Value
Property (20) Value (30)
hlod:aliasName
  • 서장옥(徐長玉)
hlod:birthDate
  • 미상
hlod:birthPlace
  • 수원
hlod:changedName
  • 서장옥(徐璋玉)
hlod:deathDate
  • 1900년
hlod:detailExplanation
  • 일명 장옥(璋玉: 長玉). 호 일해. 수원 사람이라 전해진다. 원래 30여 년간 불교 수양을 하였으나, 1883년(고종 20) 강원도 인제에 있던 최시형(崔時亨)을 방문한 이후로 동학의 지도자가 되었다. 1889년에 서울에서 체포되어 금갑도(金甲島)에 유배되었다가, 최시형이 식사때마다 하늘에 고하는 의식을 행하고 김연국(金演局)으로 하여금 750냥을 마련하게 하는 노력을 기울여 석방되었다. 1892년 서병학(徐丙鶴)과 함께 최시형에게 교조신원운동을 제의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충청도와 전라도의 관찰사에게 제시한 교도 탄압중지 요청도 효과를 보지 못하자, 교도를 모아 삼례 집회를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강경 노선을 펼쳐 온건한 교단 지도부와 자주 마찰을 빚었으며, 전라도의 손화중·김개남·김덕명·전봉준을 제자로 거느리고 새로이 \"남접(南接)\"이라는 세력을 구축하였다. 1894년 이른바 서포(徐布)의 지도자로서 전봉준과 함께 봉기를 주도하였으나, 6월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뒤 풀려났다. 그뒤 남접의 봉기에 호응치 않고 도리어 압박하는 형세에 이른 북접 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충청도에서 농민군을 규합한 것으로 보인다. 남접과 북접의 연합 위에 2차 봉기가 일어나자 청주 병영을 공격한 이후 행적을 감추었다가, 1900년에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동학 의식의 제정에 깊이 참여하였는데, 서병학이 유교 의식의 도입을 주장한 것과 달리 불교 의식을 많이 수용하게 하였다.
hlod:explanation
  • ?~1900. 동학 지도자. 1889년 체포되어 유배형을 받음. 1892년 동학의 교조신원운동을 주장. 1892년 삼례집회, 1893년 금구집회, 광화문복합상소를 주도함. 1894년 고부봉기 때에는 관에 체포되어 참여하지 못함. 1900년 9월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함.
foaf:gender
hlod:hasPrisonInfo
hlod:hasRelatedEventInfo
hlod:hasRelatedOrganizationInfo
hlod:hasSourceInfo
hlod:nickName
  • 일해(一海)
hlod:occurAge
  • 조선
hlod:personType
  • 종교인,사회운동가
hlod:realName
  • 서장옥(徐仁周)
hlod:realNameChi
  • 徐仁周
hlod:reignStartDate
  • 미상
hlod:titleKor
  • 서장옥
RDF:ty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