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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 묄렌도르프
Property, Value
Property (17) Value (21)
hlod:birthDate
  • 1848년
hlod:deathDate
  • 1901년
hlod:deathPlace
  • 중국 닝보(寧波)
hlod:detailExplanation
  • 이름은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이며 한국명 목인덕(穆麟德)이다. 할레대학에서 법학과 동양어를 전공, 청나라 주재 독일영사관에서 근무하였다. 1869년 청의 세관리(稅關吏)로 일하다가, 이홍장(李鴻章)의 추천으로 조선의 통리아문(統理衙門) 참의(參議) ·협판(協辦)을 역임하면서 외교와 세관업무를 맡았다. 1883년 일본은행에 해관세(海關稅) 수납업무를 위탁하였고, 1884년 러시아공사 C.베베르와 협조, 한 ·러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게 하였다. 그는 재정고문으로 민씨 세력의 지지를 받았으며 당오전(當五錢)을 발행하여 재정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당오전 발행은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주장한 개화파와 대립하였다. 결국 당오전이 발행되어 물가가 폭등하고 국가의 재정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1884년 갑신정변 때는 김옥균(金玉均)의 개화파에 반대하였고, 민씨 척족세력을 도왔다. 갑신정변의 뒤처리를 위해 한성조약(漢城條約)이 체결된 뒤 특명전권대신 서상우(徐相雨)와 함께 부대신(副大臣)으로 일본에 건너가 김옥균의 체포와 인도를 요구하였지만 일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 주재 러시아 공사 스페이에르와 결탁, 한국에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였다 하여, 외무협판에 재직 중인 1885년, 이홍장의 압력으로 해임되었으며, 한국을 떠나 중국 닝보[寧波]에서 죽었다. 한국 역사에 조예가 깊었고 만주어에 능통하였다.
hlod:explanation
  • 한말의 민씨의 척족세력의 지지로 얻고 활약한 독일인 고문. 외교와 재정분야에서 활동했으나 당오전 발행으로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정치적으로는 개화파와 대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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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od:hasRelatedOrganization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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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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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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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묄렌도르프(목인덕)(穆麟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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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穆麟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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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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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묄렌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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