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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탕평책_실시
Property, Value
Property (26) Value (40)
hlod:anotherNameChi
  • 蕩平, 蕩平策, 蕩平政治
hlod:anotherNameKor
  • 탕평, 탕평책, 탕평정치
hlod:detailExplanation
  • '탕평'은 《서경》 홍범조에 나오는 말로 편벽되고 당파짓지 않아야 왕도의 정치를 펼수 있다는 뜻이다. 탕평의 개념은 박세채(朴世采)가 1683년 일당전제(一黨專制)가 심해지는 당시 정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처음 제기하였다. 하지만 숙종대에는 몇차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소론 간의 당쟁이 해결되지 않았다. 탕평을 하나의 정책으로 확립시킨 군주는 영조다. 영조의 탕평책은 각 파당 내의 강경론자들을 배제하고, 영의정에 노론을 앉히면 좌의정에 소론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고르게 인물을 등용하는 완론탕평(緩論蕩平)이었다. 탕평의 기반을 확립한 영조는 점차 재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여 노론·소론·남인·소북의 사색당파를 고르게 등용한다. 영조대 탕평책은 기본적으로 노론 우위를 인정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후반으로 갈수록 몇몇 척신들을 위주로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여러 문제점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장헌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게되는 사도세자 사건이 있다. 이런 한계점을 인식한 정조는 척신을 비판하던 청류계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며 청류탕평을 펼치게 된다. 특히 1788년(정조 12) 체제공을 비롯한 남인 세력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며 노론과 남인의 보합을 도모하게 된다. 하지만 정조 역시 탕평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척족 세력을 한 수단으로 했고 그로 말미암아 후대에 세도정치(勢道政治)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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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도 >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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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후기 영, 정조 대에 당쟁을 막기 위해 당파간 정치세력의 균형을 꾀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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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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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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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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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od:hasStartAge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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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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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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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행정·법제>정치사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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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蕩平策 實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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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탕평책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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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행정/법제 > 정치사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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