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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식민_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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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사관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일본에서의 한국사 연구 전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의 한국사 연구 전통으로는 크게 주자학파(성리학, 신유학)와 국학파로 나뉜다. 임진왜란 때 퇴계 이황의 제자 강항은 포로로 끌려가 일본 학자들에게 성리학을 전파하게 된다. 한편, 본래 남송의 주희가 세웠던 주자학(성리학)을 퇴계가 한층 더 심화하여 끌어올렸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강항에게 성리학을 배우게 된 일본 학자들은 조선을 일본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한 나라로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한국사 연구자들이 주자학파였고, 일본의 한국사 연구 전통에서 소수를 이루었다. 한편,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임나일본부가 기록돼있는데, 특히 일본서기에 따르면 고대 야마토(大和)조정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군사적 지배기구로 이해할 수 있다. 임나일본부의 일본서기 기록을 맹신함과 함께 일본을 한국보다 우월하게 인식한 일본의 한국사를 연구자들이 바로 국학파였으며, 일본의 한국사 연구 전통에서 다수를 이루었다. 국학파에 의해 19세기 중후반에 잃어버린 임나일본부 지역의 고토(古土)를 회복하고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이 대두되었고, 이러한 국학파의 주장은 메이지 유신에 반영된다. 식민사관은 국학파의 한국사 연구 전통에 뿌리를 둔다. 또, 식민사관은 만세일계를 주장하는, 일왕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황국사관과 맥을 같이 한다. 식민사관은 1887년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에서 사학과를 설치하고 식민사관에 입각한 한국사 연구가 진행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1908년에는 남만주 철도주식회사에서 만선지리역사조사실(滿鮮地理歷史調査室)을 만듦으로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식민사관의 연구는 더욱 심화되고 체계화되었다. 조선총독부는 합방을 정당화 하고 저항을 무마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사 편수회 등을 통해 《조선사(朝鮮史)》,《조선사료집진(朝鮮史料集眞)》,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등의 식민사관적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1923년에는 조선사학회(朝鮮史學會)를 조직하여 학술활동을 함으로써 식민사관을 퍼트렸다. 식민사관은 1924년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에서도 이어져 식민사관의 뼈대를 다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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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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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사관(植民史觀)은 일제강점기 한국인에 대한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일제에 의해 정책적 · 조직적으로 조작된 역사관으로서, 일제의 한국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관을 말한다. 대체로, 한민족을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지배되어 왔고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정체된 민족으로 부각시켜 일본의 한국 병탄을 정당화하였다. 종종 민족사관과 대비되는 말로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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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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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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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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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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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행정/법제 > 정치사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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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역사는 정체되었고 타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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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植民史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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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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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행정/법제 > 정치사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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