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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 개태사
Property, Value
Property (20) Value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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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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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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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논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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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천호산(天護山)에 있는 절. [내용] 대한불교법상종에 속한다. 936년(태조 19)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한 기념으로 창건하였다. 태조는 후백제의 신검(神劍)을 쫓아 황산(黃山) 숫고개를 넘어가서 마성에 진을 친 뒤 신검에게 항복받고 삼국을 통일하였는데, 이것을 하늘의 도움이라 하여 황산을 천호산이라 바꾸고 절을 창건하여 개태사라 하였다. 창건할 때 이 절의 사치스러움은 극에 달하였고, 태조는 12월에 낙성법회(落成法會)를 베풀고 친히 소문(疏文)을 지었다. 그 뒤 태조의 영전(影殿)이 설치되어 기일마다 제사를 지냈으며, 태조의 옷 한 벌과 옥대 1요(腰)를 보관하였다. 국가에 중대한 일이 있으면 태조의 영전에 나아가 길흉을 점쳤는데, 1362년(공민왕 11) 공민왕이 이인복(李仁復)에게 강화도 천도 여부를 점치게 하였더니 불길하다는 점괘가 나왔으므로 천도를 중지하였고, 이듬해에 이인복을 다시 보내어 천도 여부를 점치게 하였더니 길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 초기부터 퇴락하기 시작하였으며, 1428년(세종 10) 이 절이 연산현(連山縣) 내에 있는 것이 옳지 못하므로 풍년을 기다린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진언이 있어 세종이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하였다. 1432년 이 절의 승려가 큰 수정석(水晶石) 2과(顆)를 세종에게 헌상하였고, 세종의 불교진흥책으로 중흥의 기틀을 보였으나 그 뒤 폐허가 되었다. 절터에 삼존석불입상과 석탑·부도·공양보살상이 흩어져 있었으며, 1930년에 김광영(金光營)이 중건하여 도광사(道光寺)라 하였다가, 그 뒤 다시 개태사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요사채 등이 있으며,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19호인 석불입상과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호인 철확(鐵鑊),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4호인 오층석탑과 제275호인 석조(石槽)가 있다. 이 가운데 철확은 절에서 쓰던 큰 솥으로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이며, 절의 전성시에 장(醬)을 끓이는 그릇으로 사용하였다. 이 철확에는 많은 영이담이 전해지고 있다. 가뭄 때 사람들이 이를 끌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비가 온다고 하여 여러 곳을 옮겨 다녔으며, 1944년에 고철로 쓰려고 부수려 하자 갑자기 뇌성벽력이 쳐서 파괴를 모면하였다고 한다. 이 절에서 개판된 불경으로는 1218년(고종 5) 간행된 《범서총지집 梵書摠持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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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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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4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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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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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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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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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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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사상·종교>불교>불교관련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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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산(連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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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開泰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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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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