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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 브나로드_운동
Property, Value
Property (20) Value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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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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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나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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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사는 \"배우자, 가르치자, 다 함께\"라는 기치를 내걸고 1931∼1934년까지 4회에 걸쳐 전국적인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였다. 제3회까지 이 운동은 '브나로드(v narod)'라고 불렸으나 제4회부터는 계몽운동으로 바뀌었다. 본래 브나로드는 '민중 속으로'라는 뜻의 러시아말로 러시아 말기에 이 구호를 앞세우고 1874년에 수많은 러시아 학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계몽운동을 벌였는데, 그 뒤부터 이 말이 계몽운동의 별칭으로 사용되었다. 국내의 계몽운동은 1920년대 초 서울의 학생과 문화단체, 도쿄[東京]의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다. 1926년 천도교 조선농민사에서 펼친 귀농운동(歸農運動), 1930년대 수원고등농림학교 한국학생들의 문맹퇴치운동으로 ‘상록수운동’이라 불린 운동 등을 들 수 있다. 1928년 동아일보사는 창간 8주년 행사의 하나로 문맹퇴치운동을 펼치려다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좌절되었고 이듬해에는 조선일보사가 귀향남녀학생문자보급운동을 전개하였다. 1931년부터 1934년까지 동아일보사가 전개한 브나로드운동은 매년 학생들의 하기방학을 이용하여 총 4회 진행되었다. 한글과 산술을 가르치는 고등보통학교 4, 5학년 학생으로 이루어진 학생계몽대, 전문학교 이상의 학생으로 조직된 학생강연대, 여행일기·고향통신·생활수기 등을 써서 신문사에 보내는 학생기자대를 주축으로 하여 행해졌다. 이들은 야학을 열고 음악과 연극, 위생생활을 가르치면서 계몽운동과 함께 문화운동을 병행해나갔다. 동아일보사는 학생계몽대에서 쓸 교재로 《한글공부》(3주간용)를 출판하였다. 문맹퇴치를 목적으로 시작한 이 운동은 많은 학생들이 참여, 많은 효과를 거두었으며, 1933년 계몽운동이라고 개칭하면서 폭넓게 지속되었으나 1935년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명령으로 중단되었다. 이러한 학생조직과는 별개로 동아일보사는 1931년에 새로 조직된 조선어학회의 후원으로 전국 주요도시에서 조선어강습회를 열었으나, 이 강습회 역시 총독부의 방해로 계속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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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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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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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대에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가 전개한 농촌계몽운동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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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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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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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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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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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운동·독립운동>사회운동>민족주의운동(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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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narod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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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나로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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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운동/독립운동>사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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